표현의 자유, 생각이나 느낌을 언어나 형상으로 자유롭게 드러내는 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히 주어진 권리다. 하지만 과거 표현의 자유가 없던 시절에도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하던 인물들은 존재했다. 익명으로 써 내려간 대자보나 벽보, 공공장소에 남기는 의미 있는 낙서들처럼 말이다. 저항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낙서들은 '스트리트 아트'로 불리며 거리의 예술로 자리 잡았다. 그중 그라피티(Graffiti)는 미술관의 작품들이 줄 수 없는 예술적인 의미를 거리의 대중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소통과 참여를 유도하기에 효과적이다. 다만, 낙서라는 낙인 때문에 도시 문제로 인식돼 많은 아티스트들이 체포되기도 했다. 이렇듯 도시 문제와 관련돼 비주류 혹은 하위문화로 일컬어지던 스트리트 아트를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인정받은 인물이 있다. 바로 셰퍼드 페어리. 그는 사회적인 위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실천, 'Obey!'를 외치며 권위와 관습에 저항하고 환경과 인권 등 폭넓은 주제로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지속적인 소통을 촉구해왔다.
도시 예술을 기반으로 광고, 선전 그래픽과 사회적 메시지를 결합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친 셰퍼드 페어리의 최대 규모 전시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 EYES OPEN, MINDS OPEN》를 오는 11월 6일까지 롯데뮤지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셰퍼드 페어리의 30년간 예술적 궤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초기작부터 영상, 협업, 사진 자료, 신작, 벽화까지 약 470여 점의 작품들이 출품됐다. 특히 '오베이 자이언트' 캠페인 초기 시리즈뿐만 아니라 희망과 환경을 주제로 서울 시내 건물 5곳에 직접 작업한 벽화를 최초로 공개해 거리 예술을 통한 셰퍼드 페어리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셰퍼드 페어리는 다양한 작업 방식으로 개념적 의제와 현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책임과 의미 있는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이 전시를 통해 그가 또 한 번 던지는 질문에 이제는 당신이 대답할 차례다. 눈을 뜨고, 마음을 열고. 당신의 의지로 행동하라!
네 스스로 해라 / DO IT YOURSELF
펑크 록, 그라피티, 힙합, 스케이트보드 등으로 대표되는 1970년대 후반, 거리에서 유행한 비주류 문화들은 권위와 관습에 저항하고 자유를 갈구했다. '스스로 일어나 저항해야 한다'라는 펑크 록의 DIY 정신은 셰퍼드 페어리의 예술적 철학에 영향을 주었고, 사이키델릭한 강렬한 색 조합으로 공공장소에서 시선을 이끄는 포스터는 셰퍼드 페어리의 예술 활동 전반에 걸친 비상한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작업 특징은 1989년 제작된 그의 작품 <오.지.립스>와 <앙드레 헨드릭스>에서 잘 나타난다. 셰퍼드 페어리가 반복적으로 작품에 녹여내는 아이콘들은 영화 <화성인 지구정복>에서 차용한 'Obey' 단어와 소설<1984>의 빅 브라더에서 착안한 초상,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레드박스 로고 등으로 대표된다. 작가는 권력을 비판적인 시각으로받아들이도록 자극하는 아이콘을 탄생시킴으로써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고찰을 이끌어내는 예술적 실험을 이어 나간다.
: Factory Stacks, Version 1, 2022 / : Radio Tower, 2022 / : Rise Above Flower, Version 2, 2022
: Your Ad Here, Version 2, 2022
: OBAMA HOPE, VERSION 6, 2008
희망 / HOPE
셰퍼드 페어리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적 색채와 철학적 메시지가 결합된 화면구성으로 대중에게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줌과 동시에 사회의 문제 인식을 제기한다. 1997년부터 2017년까지 제작된 포스터 작업은 유명인들의 초상화를 비롯해 평등, 반전, 인권, 환경 등의 주제로 원색의 색감과 단순 명료한 구성을 통해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2008년 당시 미국 대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의 초상을 그린 <희망> 포스터로 셰퍼드 페어리는 자신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완전히 각인시켰다. 해당 포스터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다른 이미지로 제작되어 2008년 미국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셰퍼드 페어리는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책, 영화, TV쇼 등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으며 자신에게 영향을 준 예술적 초상을 스텐실,실크 스크린, 콜라주 등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하며 인물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다.
: ERA Woman(Erasmus), 2022
생각을 시작하라 / BEGIN TO THINK
셰퍼드 페어리는 대중들에게 늘 사회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유도한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여러 가지 도상이 결합된 <위기>시리즈를 선보였다. 작가는 지구 온난화, 환경 오염, 지진 발생 등의 환경 시리즈부터 베트남전, 이라크전까지 이어지는 전쟁의 고통을 상기하고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등 작품을 통해 적극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특히 눈을 감고 있는 소녀의 손에 꽃이 꽂혀진 수류탄, 머리 위로 날아가는 전투기를 그려낸 <워 바이 넘버스>에서 그의 메시지는 더욱 명료하게 드러난다. 페어리는 대치되는 이미지를 함께 배치하여 안일한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강조하고, 만연한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는 현명한 선택의 필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 Power, 2012 / : Imperial Glory, 2012
: Peace D : Imperial Glory, 2012 ove(Red), Version 3, 2012 / : Peace Dove(Black), Version 2, 2012
OBEY. / WE ARE STILL HERE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더 파크>는 셰퍼드 페어리의 예술세계를 '공간'의 개념으로 녹여냈다. 이곳에서는 작가가 제작한 스케이트보드는 물론, 현장에서 작업한 벽화 <피스 인 블룸>을 만날 수 있다. 희망을 상징하는 꽃을 받들고 있는 여신의 형상과 역경을 이겨내고 피어난 장미 등 셰퍼드 페어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셰퍼드 페어리는 스스로를 '대중을 끌어당기는 아티스트'로 칭하며 인종과 성차별, 각종 혐오 범죄, 환경파괴에 대해 평등을 추구하고 정의를 지지하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해 예술을 통한 대중의 소통을 유도한다. 전 세계 각지에 대형 벽화를 남기고 <타임>지의 역사적인 커버를 장식한 셰퍼드 페어리는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 손꼽히며, 여전히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전하고 '행동'을 격려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INFO.
전시명:《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 EYES OPEN, MINDS OPEN》展
전시 기간: 11월 6일까지
전시 장소: 롯데뮤지엄
전시 시간: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입장 마감: 오후 6시 30분)
문의: 1544-7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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